
네팔에 있는 나의 또 다른 딸, '쁘자'
이음파티가 시작되고 굿네이버스의 변정수 홍보대사는 네팔에 있는 또 다른 딸 '쁘자'영상을 함께 본 뒤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꾸만 생각나는 아이....떠올리면 너무나 가슴아픈 네팔의 가녀린 쁘자.
온 가족이 함께 해외자원봉사를 갔던 그 해, 쁘자와 쁘자 동생이 입고 있던 허름한 옷차림에 마음이 쓰였던 변정수 홍보대사는 쁘자와 동생들에게 예쁜 옷을 사준 뒤 직접 샤워를 시켜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심정으로 작은 사랑을 전해준 변정수 홍보대사는 꿈 많은 열한 살 쁘자와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쁘자를 가슴으로 품고,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살고 싶은 변정수 홍보대사.....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건, '경험'
매년마다 해외로 나가는 변정수 홍보대사는 2005년부터 해외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혼자 하지 않거든요. 여기도 자녀분들 있겠지만 저희 가족의 1년 스케쥴 안에 2~4월에는 저희가 아동결연을 맺은 아이들을 보러 갑니다. 많은 분들이 회원님들이 도움 주시는 성금으로 다른 일 하는 곳 있어서 마음 상할 수 있는데 저는 직접 보고 왔잖아요. 그 아이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 아이가 저에게 와서 저희집 보여주고 싶다고 말해요. 원래 이랬는데 후원자 님들의 성금으로 학교도 다니고 아빠도 힘을 내요~라고 말해줍니다. 화목해진 집을 보면 제가 너무 뿌듯한 거예요. 그 모습을 제가 직접 보고 와요.“
변정수 가족나눔대사는, 직접 경험한 내용을 이음파티에 참여한 회원님들에게 전파하면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케냐에 갔을 때 황열병(아프리카 서부와 남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는 악성 전염병)주사를 맞고 직접 갔을 때 주위에서 "왜 가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일단 가보라고 말한 변정수 가족나눔대사는 많은 분들이 '동기부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답니다.
“내 몸을 써서 시간을 내야 하는 것, 그 많은 스케줄 안에 진행 한다는 것,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아무리 쓸 돈이 없고 가지고 있는 일이 없어도 천원이 됐든 만원이 됐든 그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에 나눔을 시작하게 된 변정수 가족나눔대사는, 굿네이버스를 알게 되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시족의 대명사인 변정수 가족나눔대사는 결혼잔지 벌써 17년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결혼 10주년 때 뭔가 큰 나눔을 고민하게 되었고, 방글라데시에 남편분과 함께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해도 인터넷에 '나눔'이나 '해외봉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몸으로 부딪혀보았는데, 봉사를 하고 한국에 돌아오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왔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 뒤로는 딸들과도 함께 해외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다녀오시는 변정수 가족나눔대사는, 시종일관 어머니다운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굿네이버스의 좋은 이웃'의 확산을 통해 우리 주변을 돌아보는 일들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변정수 가족나눔대사. 방글라데시와 케냐 등의 해외자원봉사활동을 함께한 큰 딸은 쓰레기 더미 가득한 곳에서 생활하는 이웃나라 친구들을 보며 나눔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느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예요"
“누구를 도와야한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직접 느끼고 엄마 없는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면 알게 됩니다"

'회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 가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