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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효칸, 스리랑카에 살다②] 스리랑카 동부, 쓰나미의 기억을 더듬어가다. 2011/04/27


2004년 인도양의 쓰나미를 기억하시나요? 처음으로 해일의 무서움을 우리에게 알려준 사건이었는데요. 효칸, 스리랑카에 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쓰나미의 기억을 더듬어 다녀온 스리랑카 동부 여행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오늘도 함께 아스라한 이국(異國)으로 떠나보실까요?

                                          [사진 설명_ 스리랑카 지도로 본 동부지역]

트린코말리,고닥 라싸나이!(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 곳, 트린코말리!)
효칸의 이음캠페인 소개 글을 기억하시나요? 그 때 제가 결연하고 있는 스리랑카 친구를 소개해드렸었는데요, 그 친구가 바로 스리랑카 트린코말리의 아동이었지요.
M*C 단비에 나왔던 카잔과 게리스의 고향이기도 하고요. 트린코말리는 스리랑카 사람들도 “고닥 라싸나이.(너무 아름다워요!)” 라고 말할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하지만 트린코말리는 내전과 쓰나미, 좋지 않은 교통편으로 스리랑카에 살면서도 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곳인지라 그곳을 향하는 제 마음은 두근두근 설렜습니다.

 
                          [사진 설명_ 빨간 기차를 타고 스리랑카 동부 트린코말리로 향하는 길]


시간이 멈춰진 마을의 아픔
동부지역에는 스리랑카의 주종족인 싱할러민족보다 인도 남부지역에서 이주해온 타밀민족이 더 많이 사는 지역인데요, 수도에서 10시간이 넘게 걸리고 사는 민족도 다른 시골이다 보니 동네의 규모도 매우 작고, 분위기도 다른 도시와는 사뭇 다른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타운도 매우 한적한 모습이었는데 이유인 즉은 쓰나미 이후, 많은 사람들이 트린코말리를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마을이라는 느낌보다는 조용하고, 시간이 멈춰진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스리랑카 사람 중에도 고향이 트린코말리였고, 그 곳에서 호텔업을 할 정도로 부유하였지만 쓰나미로 모든 것을 다 잃고 제가 살던 도시로 이주해온 사람도 있었거든요 

                                 [사진 설명_ 스리랑카 동부 트린코말리 타운 오후의 모습]

“Mr.Kim을 아시나요?”
이미 몇 년이 흘렀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쓰나미의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고통과 절망과 아픔과 슬픔,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고 하였습니다. 외국인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이다 보니 만나는 마을사람들마다 열렬히 저를 환영해주었어요.
어떤 분은 제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반색을 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는데요. “쓰나미 때 한국인 NGO사람들이 와서 많이 도와주었다.”며 자신이 만난 한국인 “Mr. Kim을 아느냐?” 등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김”씨라는 성이, ‘톰’내지는, ‘데이비드’처럼 흔한 것임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잊을 수 없는 기억속의 만남을 풀어놓으며 제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친절히 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가슴이 벅찼습니다. 2004년 피해의 규모가 너무 커서 스리랑카 정부조차도 어떻게 할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에서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함께 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다시 살게 해주었고, 희망을 주었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의 눈은 순식간에 눈물이 글썽하였습니다. 그 때의 그 만남이 지금 제가 이곳에 있게 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을, 지금도 가슴 뛰게 일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소박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마을만큼이나 따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저는 계속 동쪽 여행을 이어나갔습니다.

                              [사진 설명_ 스리랑카 동부 트린코말리의 아름다운 일출]

세계 3대 서핑 포인트, 아루감베이에 서다!
트린코말리에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6시간을 달렸습니다. 쓰나미로 유실된 도로는 아직도 복구되지 못하고, 덜컹거림으로 심술을 부렸습니다. 얼굴과 옷은 온통 새까만 먼지로 범벅이 되어, 물티슈로 닦아내기도 민망한 상태가 되었지요. 그렇게 한 나절이 걸려 도착한 아루감베이. 이곳은 세계 서핑의 3대 포인트, ‘World surf's festival'(월드서퍼페스티벌)이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제가 갔을 때 아루감베이는 막 페스티벌이 끝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축제의 흥분과 들뜸이 남아있었지요.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서퍼들이 아직 그 축제의 열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막 트린코말리를 보고 온 저에게는 조금은 예상 밖의 분위기였습니다.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다른 모습을 가진 마을, 이곳은 또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도착함과 동시에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숙소를 정하고, 거리로 나섰어요. 거리 곳곳에는 불편한 교통편을 감안하고서라도, 스릴 있는 서핑을 즐기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각국의 외국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황량하게 문을 닫은 거리의 상점들이 대부분이었고, 문을 연 곳도 이 시즌에만 반짝 하고 다시 떠나버린다고 하더라고요. 쓰나미 한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한 마을, 지역까지도 바꿔버렸네요. 외국인은 찾지만, 자국인은 떠나는 마을, 무언가 모순적이면서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진 설명_ 쓰나미로 가게를 잃어버린 아루감베이의 옷가게 주인]

희망을 찾고 있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외국인의 눈으로 본 스리랑카와 쓰나미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스웨덴에서 온 아주머니께서 스리랑카 아저씨와 결혼을 해서 차린 게스트하우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웨덴 아주머니는 여행을 좋아해서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다가 독특한 분위기의 스리랑카에 매료되었고, 이곳에서 만난 스리랑카 아저씨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루감베이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그 두 분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고향친구들로 향수를 달래고,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지요. 하지만 2004년 쓰나미가 발생하고, 다시 이곳에 게스트하우스를 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고 해요.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서 얻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그 상처로 다시 스웨덴으로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이곳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핑시즌이 되면 이렇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다시 이곳에 정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웨덴 사람이지만 스리랑카 사람들과 함께 아픔을 겪었던 그녀,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새로 시작해보려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사진 설명_ 게스트 하우스 주인집 딸과 함께 찰칵!]

고통을 함께한다는 것...
저는 NGO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떻게 하면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웃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무어라 답을 내리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아주 막연히 ‘아픔을 함께하는 것’의 비밀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국제구호개발NGO로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언제든지 달려가 그들과, 그들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 지금은 온라인으로 그들의 아픔을 알리고, 전하는 일로 함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을 그 날을 꿈꿔봅니다.

                       [사진 설명_ 2004년 쓰나미 때, 굿네이버스 스리랑카 긴급구호 활동 모습]

효칸의 두 번째 스리랑카 이야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다음 이야기는 ‘기적(?)의 의료봉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리랑카 아유로베딕 한방병원에 모인 그들,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벌써 궁금하지 않으세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D
효칸은 대학에서 국문학 전공 후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스리랑카에서 '한국어 교사'로 2년간 해외자원봉사활동을 경험한 뒤, 2010년 7월 1일 굿네이버스에 입사했다.e-나눔팀의 '며느리'로서 살림살이를 안밖으로 챙기고있는 그녀는 따뜻한 성품과 진취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굿네이버스를 내 집처럼 여기며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2011/04/27 12:00 2011/04/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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