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파는 사진작가 이요셉, 그가 전하는 두번째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래요?
(사진작가 이요셉님은 굿네이버스에서 능력 나누미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150m 아래 그들의 생명이 있었습니다.”


드에서 우물을 파는 금액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싼 것도 제가 우물을 파게 된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웃음) 보통은 아프리카에서 우물을 파는데 700만원의 돈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그 만큼의 돈이라면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나누고 싶은 마음만 가졌을지도 몰라요. 근데 차드는 암반이 약해서 2,000$ 정도.. 요즘 환율이면 250만 원 정도의 돈이 있으면  150m 아래의 깨끗한 물을 끌어올릴 펌프를 설치할 수 있다는 거죠!

벅차는 마음으로
‘아, 그래 잘됐다! 이건 기회야! 차드에 우물을 파자!’ 라고 생각하니 이제 또 다른 걱정이 생기더라구요.(웃음)  제가 제 가정이 아닌 생판 모르는 남을 돕는다고 하면 아내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죠.  근데 너무나도 감사하게 아내가 저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동참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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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어렵게만 생각했던 ‘잘 사는 방법’인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하며 사는 일’을 실천할 수 있게 되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혼자만 누리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홈페이지에 차드 사진과 우물 이야기를 올렸죠.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함께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솔직히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실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나누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어요.”

번 우물 프로젝트에 함께 해주신 지인이 계세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뇌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하더래요. 검사비 백만원은 이 분에게 너무 큰돈이라 엄두도 못 내고 포기했는데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랍니다. 아들은 유학에 갈 예정이었는데 출국하던 날 백만원을 내밀더래요. 알고 보니 유학 준비하면서 공사장 일용직을 하면서 모은 돈이었던 거예요. 이 분은 그 돈을 들고 펑펑 울다가 차마 검사비로 쓰지 못하고 아들이 돌아오면 줘야지, 하고 적금에 넣어 두었다가 이번에 우물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 돈을 털어 선뜻 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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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이렇게 코 끝 찡한 사연을 품은 금액이 적게는 천원, 많게는 260만원씩 모여져서 25,529,719원이 되었어요. 우물 한 개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물 열 개를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이건 절대로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제가 할 수도 없구요. 저처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사랑 부스러기들이 하나로 모이니 커다란 기적이 만들어진 거죠. 아프리카 차드의 아이들을 웃게 만드는 기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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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굿네이버스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굿네이버스와 ‘함께’ 하는 거예요.”


눈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방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 이를 통해 우리가 받는 것 역시 많다고 생각해요. 차드 우물 모금을 진행 하면서  ‘나눔’은 풍요롭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메마른 차드 땅에 우물을 파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듯이, 메마른 제 마음에 나눔의 우물을 통해 뜨거운 사랑이 넘쳐나는거죠. 그 풍요로움과 채움이란.. 겪어보지 못하면 몰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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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 아이들을 돕는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잖아요.후원을 하고, 능력을 나누는 것들이 단지 굿네이버스가 좋은 일을 하는 걸 돕는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전 그 반대라고 생각하거든요.우리가 하고 싶은 일에 굿네이버스가 조력자가 되어주는 거 아닐까요? 즉 우리가 굿네이버스를 통해, 굿네이버스와 함께 그 일을 한다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이요? 다함께 더 잘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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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또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는 계획하고 있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물파기 모금도 계획하고 진행한 게 아니었고요.(웃음) 우선은 굿네이버스와의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예정이예요. 그렇게 또 걸어가다 보면 걸음 가운데 분명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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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19:25 2010/04/01 19:25


'사진' 寫眞 =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형상. 여러분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쑥냥에게는 사진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인데요. 어떤 한 장면으로 아픈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넘어갈때, 기여코 눈물까지 흘리는 날도 있죠. 후훗~ 왜 갑자기 이런 소릴하느냐? 하시는분들~ 오늘 우물파는 사진작가 이요셉님이야기 함께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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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네이버스와 함께 한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거죠."

"아프리카..다들 힘든 곳, 어려운 곳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전 힘든 상황과 관계없이 환하게 웃고있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찍고 싶어요. "


굿네이버스 능력나누미스트 사진작가 이요셉님의 나누미스트이야기 함께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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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어요.  어머니가 사진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카메라로 사진을 많이 찍곤 했거든요. 하지만 사진 찍는 것을 업으로 삼는 건 생각지도 못했어요.  저는 색약의 눈을 가지고 있고, 실제 대학에서도 국제통상학을 전공했고요.  근데 어느 샌가 제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살아가고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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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년의 어느 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서 살아가는 제게 능력을 나눠달라며 굿네이버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에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익숙한 것이지만, 이 사진을 통해 굶주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기회를 사양할 이유가 없었죠.

그 이후로 굿네이버스와 함께 아프리카 촬영을 진행했어요. 에티오피아, 케냐, 르완다, 탄자니아, 차드..   그리고 비행기를 잘못 내려서 가 본 나라, 한 군데. (웃음)



2009년 차드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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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네이버스와 함께, 또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나라를 방문했는데 차드는 ‘어떻게 이렇게 못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나라였어요. 차드는 7월이 겨울인데도 50도를 넘는 날씨이다 보니 하루에 탄산수 6병을 넘게 마셔도 화장실을 안가도 되더라구요. (웃음)  풀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메마르고 갈한 땅, 아프리카 여러 국가를 다녀봤지만 차드가 가장 비참했습니다. 험한 조건, 불안한 정세, 도로도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까지 떨어지고.. 이렇게 힘든 곳이다 보니 구호단체들도 꺼려서 돕는 손길조차 드물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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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네이버스 차드 지부장님 집에서 생활하면서 돌아본 차드는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울기도 너무 많이 울었구요.  전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참 좋아하는데, 이번엔 그들의 눈물과 아픔을 사진에 담아서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야 이 아이들을 위로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차드의 상황을 제 눈물과 함께 하나, 하나 카메라에 담아냈습니다. “유뉴스 이삭을 만나고 우물을 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두와라 딤실로’.

이 마을은 제가 차드에 우물을 파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을 우물 주위로 오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 받는다는 사실은.. 잔혹한 말이지만- 당연한 결과인거죠.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작은 병원에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힘들게 수술로 살아난다 해도 ‘만원’하는 링거를 맞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요.. 진짜 꼴랑 ‘만원’ 때문에 죽는겁니다. 그 돈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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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딸이 있어요. 이제 태어난 지 10개월이 되었으니 제가 차드에 있을 때는 백일을 갓 넘긴 갓난아기였는데, 이삭이를 보는 순간 정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정말 말 그대로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보며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만 원짜리 영양제를 맞히는 것뿐이라는 게...

팔이 너무 얇아 혈관을 찾을 수 없어서 성인용 긴 주사바늘로 아이에게 시술해야 했어요. 고통스러워하는 아이 얼굴이 평온하게 잠들기 까지 제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겹쳐보이던지 정말 숨을 쉬기도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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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 다음날 차드를 떠났어야 했기 때문에 지부장님께 이삭이의 분유를 부탁하고 돌아섰습니다. 이삭이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솔직히 분유를 먹고 건강해졌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고..
저도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 이삭이는 결국 죽었어요.
이게 그 땅의 현실입니다. 너무 잔인하지만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요.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삭이의 눈망울, 아픔을 머금은 그 까만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우물을 파야겠다, 죽어가는 그 땅에 한국 사람들이 만든 생명우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우물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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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17:34 2010/03/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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